하운의 시학
행복바이러스
극한의 감정 행복
극한의 감정 행복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그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 속에서 녹이 쓸거나 자동적으로 퇴출 되거나 소외되어져 버린다.
사회는 언제나 인간이 행동하도록 만든다. 사회는 행동하는 인간을 원한다.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익하거나 유익하지 않거나 사회는 결과에 대한 승과만을 요구한다. 그 승과가 좋으면 환대받고 승과가 좋지 못하면 환대 받지 못한다. 그 것은 스스로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멸시도 인내할 수 있으면 끝까지 살아갈 수 있으며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수모나 환멸이라고 느끼는 경우에는 인간은 그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인내로써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은 사회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사회에서 벗어나 산으로 가거나 나그네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 이러면서 ‘초월’하고 산다. ‘초연’하게 산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도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같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는 인내와 좌절감을 맛보면서 사회라는 거대한 괴물과 한 판 승부를 겨루며 살아간다. 그것으로부터 이기는 것은 극복해 나가는 것이며, 이기지 못하면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하다고 하며, 행복하지 못하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사회라는 시스템을 전제로 두고 말한 행복의 가치 기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 어려움을 승리로 극복하였더라도 결국은 회의를 느끼고 사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후에 사람 스스로가 초탈해지는 경우이다.
이와 같이 말할 때 우리의 행복은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승리하여 얻을 수 있는 쾌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나서 얻는 그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행복’ 이 글자의 정의조차도 투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에 의하여 마음속에 그려지는 순간순간의 정의定意일 뿐이다. 행복 이 글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협의에 의한 정의라면 인간이 소위 한 평생을 산다고 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한 순간의 행복이 불행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행복이 될 수가 있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은 하나의 몸체에 두 가지의 얼굴이다. 100%의 행복도 100%의 불행도 없다. 행복이 사람들이 느끼는 극한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 감정의 크기를 100%의 기준으로 산정할 때 50%의 행복과 50%의 불행이 함께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중 한 1%에 의한 감정의 기복이 ‘극한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극한의 감정인 ‘행복의 감정 치수’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행복의 감정수치는 50%가 되나 불행의 감정 수치는 49%가 되는 것이다.
그 극한의 감정인 ‘행복의 느낌’은 그 1%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그 1%는 세상의 환경과 변화에 따른 내 자신의 감정의 기복에 따라 변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진리는 하나로 이어진다.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것은 비구름이 없기 때문이고, 굿은 날씨가 이어지는 것은 비구름이 있기 때문’ 이듯 비구름이 좋은 날씨와 굿은 날씨를 결정하는 것처럼.